[방민준의 골프세상] 81세 할머니의 걸림 없는 스윙을 반추하며

▲사진=골프한국

30여 년 전 가끔 찾던 지하 골프연습장에서 뵙던 할머니를 요즘 머릿속에 그린다.

먼발치에서 볼 때는 한 70 가까이 되었겠다고 생각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70은 훨씬 넘어 보였다. 허리는 거의 꼿꼿한 편이었으나 얼굴의 주름이나 목소리가 나이를 감출 수 없었다.

이 할머니를 유심히 관찰한 것은 스윙이 너무나 부드럽고 우아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젊은 남자들이 힘을 잔뜩 들이고 볼과 무슨 원수라도 진 듯 기를 쓰고 두드려 패는 데만 열중하는데 이 분은 백스윙과 팔로우 스루가 완벽히 이뤄지는 부드러운 스윙으로 연습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단히 좋은 스윙’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윙이었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윙은 아무런 옹이가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여자 어니 엘스를 보는 듯했다.

궁금증이 도져 레슨프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81세라고 했다. 6·25 전란 때 월남해 동대문시장에서 큰 포목상으로 성공한 뒤 나빠진 건강을 찾기 위해 동갑내기 남편과 골프를 시작했다고 했다.

70대에 접어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쇠현상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추스르기도 어려운 나이에 젊은이들이 수범으로 삼아야 할 스윙을 구사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퍼팅 연습을 하는데 3~4m 거리의 퍼팅 성공률이 거의 80% 가까이 되었다.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려 할머니에게 다가가 정중히 말을 붙였다.
“정말 모두가 탐낼 좋은 스윙을 갖고 계십니다. 골프를 하신 지 오래되셨나 보죠?”
할머니는 이북 억양이 섞인 소리로 말했다.
“골프 시작한 지 한 15년 정도 되었어요.”

역산해보면 65세쯤에 골프채를 잡았다는 얘기다. 그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 저런 우아하고 교과서적인 스윙을 익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 배우셨나 봐요? 남들은 힘 빼는 것도 제대로 터득하기 힘든데.”
“시키는 대로 하기도 했지만 힘이 없어서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습디다. 쓸 힘이 없으니 부드럽게 스윙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네까?”

그러면서 멕시코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칠순을 기념해 멕시코 여행을 하다가 어느 마을에 묵게 되었는데 마침 마을에 9홀짜리 골프장이 있어 부부가 골프를 했다고 한다.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 뵈는 노인 부부가 골프를 하겠다니 골프장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냥 골프코스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라운드를 직접 하겠다는 뜻이냐?”고 책임자가 물었다.
“물론이다. 이렇게 멋진 코스에서 라운드를 못하고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두 노인의 눈빛이 하도 간절해 라운드가 허락되었고 부부는 대여 채로 라운드를 했다.

첫 홀에서 노인 부부가 멋진 스윙으로 티샷을 날리고 우아한 스윙으로 순탄하게 라운드를 이어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특히 할머니의 스윙에 놀란 주민 한 사람은 자청해서 캐디를 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골프를 배운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등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골프를 배운지 5년밖에 안 되었다는 말에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골프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없는 힘 억지로 내려 하지 말고 그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골프를 배운 덕에 남편과 18홀을 거뜬히 돌며 스코어도 100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연습하는 틈틈이 유연성과 근력을 키우기 위한 가벼운 체조를 하는 것을 보면 50~60대의 몸으로 보였다.

어느덧 구력 30년을 넘기면서 30여 년 전 그 할머니의 스윙에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