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안병훈·배상문·김주형에게 희망 쏜 임성재의 PGA투어 첫 우승

▲2020년 혼다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한 임성재 프로가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샘 그린우드

임성재(21)가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 비치 가든스의 PGA 내셔널 챔피언스코스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혼다 클래식에서 들어 올린 우승컵엔 담을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임성재 개인적으로 50번째 PGA투어 무대에서 거둔 귀중한 첫 우승이다. 정식 데뷔 이후로는 48번째 만이다.

기복 없는 꾸준한 성적으로 2018-2019시즌 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우승 없는 신인왕’으로서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는데 이번 우승으로 그 찜찜함을 털어버릴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최근 우승이 없어 고인 물처럼 멈춰있던 한국선수들의 우승 물꼬를 다시 텄다. 최경주(50·8승), 양용은(48·2승), 배상문(34·2승), 노승열(29·1승), 김시우(24·2승), 강성훈(32·1승)에 이어 한국인으로 7번째로 PGA투어 우승자 대열에 함께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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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선수들이 매년 10승 이상을 올리며 LPGA투어를 지배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PGA투어에선 지난해 5월 강성훈이 AT&T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한국 남자선수들은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지난주 벌어진 지구촌 골프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의 용트림 신호가 나타났다.

우선 우승권에서 자주 경쟁을 벌여온 임성재가 PGA투어 최강자들 틈에서 경이로운 경기로 우승컵을 안았다.

4라운드 시작하자마자 4연속 버디로 단숨에 선두로 올라선 안병훈에게선 PGA투어의 중량급 선수 면모가 풍겼다.

군 복무를 마치고 투어에 복귀했으나 시드를 잃어 PGA 2부인 콘페리투어에 출전 중인 PGA투어 통산 2승의 배상문은 1일 멕시코 과나후아토 레온의 엘 보스퀘CC에서 열린 엘 보스퀘 멕시코 챔피언십에서 재기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단독 1위로 3라운드에 나서 1타 차 2위로 마친 그는 4라운드에서도 한때 선두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국 공동 7위로 마쳤다.

한편 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 밀브룩 리조트코스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뉴질랜드 오픈에서 김주형(17)은 사흘 내내 선두를 지켜 우승이 기대되었으나 마지막 4라운드에서 1타밖에 줄이지 못해 이날 하루 무려 8타를 줄인 브래드 케네디(호주)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김주형은 단독 4위로 마쳤으나 호주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강자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대범한 경기를 펼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좀 더 경험이 축적되고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를 가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머지않아 PGA투어 문을 노크할 것으로 기대된다.

PGA투어 우승은 대회의 경중(輕重)을 떠나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것이지만 PGA투어의 상남자들이 거의 총출동한 대회에서 쟁쟁한 추격자들을 뿌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는 것은 프로골퍼로서의 임성재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출발은 초라했지만 그 끝은 장대했다.
1라운드 2오버파로 공동 63위였으나 2라운드 공동 9위, 3라운드 공동 5위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의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PGA투어의 절대 강자들을 압도했다.

3타 차 공동 5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임성재는 첫 5개 홀에서 4개의 버디를 쓸어 담으며 수직 상승했다.

7번 홀(파3) 보기를 11번 홀(파4) 버디로 만회하며 한때 단독 선두에 나섰으나 12, 13번 홀 연속 보기로 주춤하면서 순위가 밀렸다.
전날 2타를 잃었던 ‘베어 트랩(Bear Trap)’(15, 16, 17번 홀)에서 임성재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난코스인 PGA 내셔널 챔피언스 코스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 베어 트랩은 타수를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그러나 임성재는 달랐다. 남들이 조심하는 코스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15번 홀(파3)에서 티샷을 홀 2m에 붙여 버디를 낚아 공동 선두가 됐다. 16번 홀(파4)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리고도 파로 막았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같은 조의 매킨지 휴스(캐나다)가 16번 홀에서 보기를 범해 임성재가 단독 선두로 나섰다.

휴스가 17번 홀(파3)에서 약 16.5m의 긴 버디에 성공하며 추격했지만, 임성재도 2m 버디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동반자가 불가능해 보이는 버디 퍼팅을 성공하면 다른 동반자는 짧은 퍼팅을 놓치기 쉬운데 임성재는 강했다. 휴스의 긴 버디 퍼팅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퍼팅을 성공시켰다.
두 선수는 18번 홀(파5)에서 나란히 파로 마무리하고 챔피언조의 결과를 기다렸다.

‘필드의 예수’로 불리는 챔피언조의 토미 플리트우드(29·잉글랜드)가 17번 홀에서 버디를 낚으며 1타 차로 쫓아왔으나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트리며 추격전은 끝났다.
우승컵을 치켜든 임성재가 그렇게 듬직해 보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