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이단아들이 PGA투어를 풍요롭게 한다

▲2020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골프대회에 출전한 티럴 해턴. 사진제공=Getty Image for THE CJ CUP

‘전장에 나가 혼자 수천의 적과 싸워 이긴다 해도 자기를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용감한 전사이니라.’ (『법구경』 중에서)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정복한 사람보다 낫다.’ (『잠언』 11장 22절)

동서양의 경전에 이런 잠언이 있는 것을 보면 분노를 다스리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스코틀랜드의 한 마을에 젊은 사나이가 이사와 마을 골프클럽에 가입했다. 어느 날 혼자서 라운드를 하다 짧은 퍼팅을 실패하곤 치솟는 화를 못 이겨 퍼터로 그린을 찍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신부가 이 광경을 보았다. 이 사나이의 비신사적 행위는 곧 골프클럽에 전해졌고 골프클럽은 이튿날 마을 게시판에 이 사나이의 행동을 적시하면서 마을을 떠날 것을 명령하는 공고문을 붙였다. 공고문이 붙었다는 소문을 들은 이 사나이는 다음날 새벽에 마을을 빠져나갔다.

위의 일화는 골프에서 에티켓이 얼마나 중시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골프가 얼마나 분노에 빠지기 쉬운 운동인가를 말해주기도 한다.

골프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운동이다. 골프만큼 곳곳에 분노의 도화선과 지뢰가 깔려있는 운동도 드물다.

골프장에서 겪는 분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분노다. 연속되는 OB나 미스 퍼트, 평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실수 등은 스스로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다.

골프를 쳐보면 인내의 깊이를 금방 알 수 있다. 평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다. 잘 참아 나가다가도 끝내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1930년대 미국의 프로 래리 스텍하우스는 기묘한 습벽으로 유명했다. 미스 샷을 한 후 분노를 못 삭여 자기 손이나 팔을 나무둥치에 거칠게 내리치는가 하면 자신의 주먹으로 자기 턱을 쳐 그 자리에서 실신한 적도 있다. 어느 대회에서 3퍼트를 한 뒤 퍼터로 자기 다리를 강타, 다리뼈에 금이 가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1972년 한 경기에서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스코어를 기록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골프장을 빠져나온 뒤 근처의 한 장미원 안으로 들어가 가시 돋친 장미줄기로 다리를 후려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고도 분을 못 이겨 장미가시를 바닥에 깐 뒤 그 위에서 마구 뒹굴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때 입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는 두 달 동안 경기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홀컵 1m 거리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퍼트한 뒤 아끼던 승용차의 앞 유리를 박살내고 문짝과 시트를 뜯어냈다. 그것도 부족해 보닛을 열고 엔진까지 뜯어내고서야 겨우 화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1960년대에 명 프로로 활약한 미국의 데이브 힐은 퍼팅을 실수한 뒤 습관처럼 퍼터를 꺾었는데 1961년 한해만 퍼터 14개를 꺾어 개당 100달러씩 모두 1,400달러를 벌금으로 물기도 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세르히오 가르시아. 사진제공=Getty Image for THE CJ CUP

이달 초 열린 PGA투어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세르히오 가르시아(40)도 솟구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나온 돌출행동으로 악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는 퍼트를 실수한 뒤 그린을 퍼터를 찍고 홀에 침을 뱉아 골프 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 그도 나이 40에 이르러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지난 19일 끝난 PGA투어 더 CJ컵 대회에서 공동 3위에 오른 티럴 해튼(29·잉글랜드)도 불같은 성격으로 인터넷을 장식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중앙일보의 성호준 기자가 ‘이전에 없던 개성적 연기파 프로 골퍼 티럴 해튼’이란 제목으로 그의 기행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실수한 뒤 화를 못 참아 클럽으로 땅을 내리치거나 클럽을 던져버리기 다반사다. 2018년 월드컵에서선 드라이버로 티잉구역의 티마크를 부수고 웨지를 물에 던지고 2017년 터키시 오픈에선 퍼터를 부러뜨린 뒤 웨지로 퍼트를 하기도 했다.

골프 선수에게 절실한 것은 뛰어난 골프 기량만이 아니라 순간순간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는 능력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PGA투어가 모두 필 미켈슨(50)이나 조던 스피스(27) 같은 모범적인 신사들로 채워져 있다면 어떨까.

이 세상이란 원래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용광로처럼 끓어야 진국 같은 재미가 나는 법이다.
PGA투어의 맛과 재미가 풍부한 것은 세르히오 가르시아나 티럴 해턴, 케빈 나 같은 이단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