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타이거 우즈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말?

▲2019년 열린 클래식 자동차 전시회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생산된 지 50년, 아니 100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차들이 있다. 클래식 카로 불리는 차들이다. 대부분의 차들은 차령이 20년 전후만 되면 폐차장으로 향하는데 클래식 카들은 유별난 주인을 만나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도 골동품으로서 천수를 향유하고 있다.

차 주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차를 자신의 분신 이상으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끔찍이 사랑하기 때문에 녹슬고 상처 나고 삐걱거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고에서 자동차와 함께 보낸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윤을 내는 것이 중요한 일과요 즐거움이다.

차 주인들은 혹시라도 차가 상하기라도 할까 봐 평소에는 차고에 모셔 두고 클래식 카 대회 등 특별한 경우에만 바깥 구경을 시킨다.

차 주인들의 유별난 자동차 사랑이 폐차장에서 고철 신세가 되었을 고물차를 클래식 카로 둔갑시킨 것이다. 불행하게도 먼저 수명을 다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의 주인이다.

골프의 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묘미를 평생 누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다. 골프채를 놓지 않는 한 나이를 먹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육체를 부단히 단련하고 골프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승산이 없는 줄 알면서도 나이와의 처절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밀려드는 육체의 노화를 막아낼 수는 없다. 체력은 쇠잔해가고 골프 실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아, 옛날이여!”만을 외치지 않고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자세를 가진다면 그는 행복한 골퍼가 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미국 프로야구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이어가고 있던 볼티모어 오리올즈 소속의 철인 칼 립켄 주니어는 1998년 9월21일 뉴욕 양키즈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앞두고 래이 밀러 감독에게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선발 출장자 명단에서 빼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신인 라이언 마이너가 립켄 대신 3루수로 출장했고 1982년 5월30일부터 16년3개월21일 동안 단 한 경기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립켄의 연속 경기출장 기록은 2,632경기로 종지부를 찍었다.

립켄의 결장 소식이 전해지자 양키즈 선수들은 경기 전 벤치 앞에 일렬로 늘어서 립켄에게 경의를 표시했고 구장을 가득 채운 5만여 명의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노장의 결단에 아쉬움과 환호를 함께 보냈다. 립켄이 수립한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메이저리그 120년 역사상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5년 9월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 게릭이 1939년 세웠던 종전기록(2,130경기)을 56년 만에 경신했던 립켄은 그동안 여러 차례 부상을 겪기도 했지만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감동을 자아냈다. 그는 또한 의지력 못지않은 뛰어난 기량을 과시, 1982년 신인왕을 비롯, 1983년 1991년에는 리그 MVP로 선정됐고 16년 연속 올스타로 뽑히는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스타로 존경받았다.

그는 감독조차 그의 위대한 기록을 의식해 마음대로 자신을 빼지 못하는 상황에서 팀 전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본인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기록행진이 팀 성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도 알았다. 그는 그만둘 때를 알고 용단을 내림으로써 그의 명성은 생명을 이어갔다.

『노자』에 이르기를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누리게 되면 교만해질 수도 있고 물러날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은 물러날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다. 지니고서 이를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갈아서 이를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보존하기 어렵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킬 수 없고,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될 것이니, 공이 이뤄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가 2020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조조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노장 샘 스니드(Sam Snead)와 톰 카이트(Tom Kite), 그리고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젊은 선수가 본 시합 전에 연습라운드를 같이 했다. 오거스타 내셔날 코스 13번 홀 파5 도그렉 홀에서 샘 스니드가 드라이버 샷을 잘 치고 나서 남아공 선수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이때 샘 스니드가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 나이 때는 저 나무 위로 그냥 넘겨 버렸다네.”
샘 스니드의 말에 자극된 젊은 선수는 드라이버를 힘껏 휘둘렀다. 그러나 볼은 소나무 높이 3분의 2쯤에서 걸려버렸다. 이를 보고 샘 스니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기야 내가 자네 나이 때에는 저 소나무도 자네 키만 했었지.”

지난 23~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오크스의 셔우드CC에서 열린 PGA투어 조조 챔피언십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해 최종합계 1언더파 287타로 77명 중 공동 72위를 한 타이거 우즈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이 ‘아 옛날이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