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는 욕심을 덜어내는 ‘마이너스의 경기’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퍼는 적은 타수를 추구한다.
골프는 육상 스키 스피드스케이트 등과 같이 기록이 낮을수록 인정을 받는 스포츠다. 다른 스포츠는 점수가 많고 기록이 높을수록 좋지만 골프는 적을수록, 낮을수록 좋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골프는 절제의 스포츠란 뜻이다. 욕심을 덜어낼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긴 샷은 유용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절제다.

파4 홀을 원온 시킬 수 있는 장타자라 해도 원온을 노릴 것인지, 안전하게 투온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반드시 극적인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원온을 노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전한 루트를 선택하는 것이 순리다.

특히 아마추어 장타자의 경우 파5 홀에서 투온의 기회를 자주 맞게 되고 욕심도 생기는데 바로 이때가 절제력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스코어에 여유가 있고 실수하더라도 3온의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온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팽팽한 접전이 이뤄지고 있고 그날 페어웨이 우드의 감이 별로일 때는 안전하게 3온을 노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럴 때 무모하게 투온을 노리고 페어웨이 우드를 휘둘러 뒷땅을 때리거나 러프나 OB구역으로 볼을 날리고 나면 한꺼번에 골프의 리듬을 잃고 자멸의 길로 떨어지고 만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호쾌한 장타를 자랑하는 선수는 갤러리로부터 환호를 받고 중계 카메라의 표적이 되지만 정작 우승컵은 무모한 모험이나 쇼를 요구받는 순간에도 절제력을 발휘한 선수에게 돌아간다.

▲골프 전설인 바이런 넬슨(오른쪽) 진 사라젠(가운데) 샘 스니드(왼쪽).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US오픈 2회, US PGA 챔피언십 3회, 디 오픈과 마스터스 각각 1회씩 우승한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골퍼 진 사라젠(Gene Sarazen, 1902~1999)이 1928년 디 오픈에 도전할 때의 얘기다. 미국의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한 사라젠의 마지막 꿈은 디 오픈 우승이었다. 1922년 1924년 두 차례나 디 오픈을 제패한 월터 헤이건(Walter Hagen, 1892~1969)과 함께 영국행 여객선에 오른 사라젠이 자신의 열망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 대회에서 참석하기 위해 벌써 몇천 달러를 썼는지 몰라요. 앞으로 디 오픈 타이틀을 획득하기까지 많은 돈을 쓰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죠. 나의 최대의 꿈은 어떻게 해서든 디 오픈에서 우승하는 것뿐입니다.”
헤이건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 자네가 디 오픈을 제패하겠다고? 어려울 거요. 내가 고용하고 있는 캐디의 도움을 받는다면 몰라도….”

헤이건은 위스키로 입술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지. 자네의 꿈이 디 오픈 우승이라면 내가 캐디를 빌려주지. 나는 이미 두 번씩이나 우승했으니 나보다는 자네가 우승하는 것이 더 감격스러울 거야.”

헤이건을 두 번씩이나 디 오픈을 제패하게 한 캐디는 바로 스키프 다니엘즈였다. 대회가 열리는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 코스에 도착해 다니엘즈를 만난 사라젠은 첫눈에 반해버렸다. 나이는 61세였지만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노병으로 그 당시 이 지역을 늘 순찰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코스는 물론 골프장 곳곳에 자리한 벙커나 러프를 자기 집 마당을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대회 이튿날이었다. 14번 홀에서 사라젠의 드라이버 샷은 오른쪽 러프로 날아갔다. 파5의 이 홀은 그린 앞 70야드 쯤에 깊은 샛강이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까다로운 코스로 ‘수에즈운하’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러프에 빠진 볼의 라이를 살피고 난 사라젠은 우드로 잘 쳐내면 샛강을 넘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첫날을 72타로 끝낸 그는 안전 위주의 플레이로는 선두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니엘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골프 백 속에 있던 5번 아이언을 가리켰다. 그래도 사라젠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기서 버디를 잡아야만 선두에 나설 수 있단 말이야.”
고집을 피우는 사라젠에게 다니엘즈가 애원하듯 말했다.
“진, 오늘은 절대 안 됩니다. 내일이라도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5번 아이언을 만지작거렸다.
“아니야, 여기서 반드시 버디를 노려야 해.”

사라젠은 3번 우드를 꺼냈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다니엘즈의 얼굴을 외면한 채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러나 볼은 20야드밖에 나가지 않았다. 여전히 러프 속이었다. 자제력을 잃은 사라젠은 3번 우드로 세 번째 샷을 했으나 간신히 페어웨이로 나오는 데 그쳤다. 결과는 더블 보기.
두 번째 라운드를 76타로 끝낸 사라젠은 3?4라운드에서는 다니엘즈의 충고를 잘 받아들여 선두인 월터 헤이건을 1타 차까지 추격했으나 결국 2타 차로 헤이건에게 우승컵을 넘겨주어야 했다.

사라젠과 헤어지던 날 다니엘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사라젠씨, 다시 한번 해봅시다. 내가 죽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에게 디 오픈 우승컵을 반드시 안겨주고 말겠소.”
나중에 사라젠은 이렇게 회상했다.
“만약 그때 다니엘즈의 충고대로 5번 아이언으로 볼을 쳐내고 3타로 온 그린 시켰다면 버디 아니면 파를 기록할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우승을 했거나 월터 헤이건과 연장전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통한의 실수를 했다.”

다행히 사라젠은 4년 후인 1932년 다니엘즈의 도움으로 13언더파의 신기록을 세우며 대망의 디 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도 사라젠은 자칫 다니엘즈를 외면했다가 우승을 놓칠 뻔했다. 사라젠은 다니엘즈가 나이 65세에 골프백을 짊어지기 힘들만큼 건강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젊은 캐디를 고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젊은 캐디와 연습라운드를 하는 사라젠의 샷은 정상이 아니었고 코스공략도 엉터리였다. 호흡도 맞지 않았다. 젊은 캐디는 단지 사라젠이 요구하는 골프채를 뽑아주는 일밖에 할 줄 몰랐다. 대회 3일을 남겨두고 사라젠은 너무 늙었다고 내쳤던 다니엘즈를 다시 불러 이틀간의 연습라운드로 제 컨디션을 되찾은 뒤 대회에 임해 우승할 수 있었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1999년 영국 카누스티 골프클럽에서 벌어진 디 오픈 최종 라운드 18홀에서의 프랑스의 장 방 드 벨트의 추락은 자제력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18홀에 선 그의 스코어는 경기를 먼저 끝낸 폴 로리(스코틀랜드), 저스틴 레너드(미국)보다 3타 앞서 있었다. 아무도 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더블보기를 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방 드 벨트는 드라이버를 빼들었다. 좀처럼 드라이버를 꺼내 들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홀을 드라이버 샷으로 장식해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드라이버 샷은 러프에 떨어졌으나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리한 투 온을 노린 두 번째 샷은 관중석을 맞고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샷은 워터해저드에 빠졌고 1벌타를 먹고 날린 다섯 번째 샷마저 벙커에 빠졌다.
결국 트리플 보기를 범해 저스틴 레너드 폴 로리와 함께 4개 홀 연장전에 들어갔으나 이미 스스로 무너져버린 그는 폴 로리가 카누스티의 새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장 방 드 벨트는 경기 후 “18홀에서 안전한 경기를 할 수 있었지만 소극적 플레이는 골프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여겨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다”고 털어놨다. 방 드 벨트는 욕심과 모험의 유혹을 억누를 줄 아는 자제력이 가장 강한 용기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골프만큼 자제력을 요구하는 운동도 없다. 홀마다 샷마다 항상 욕심과 모험의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골퍼에게 진정한 용기란 과시욕이나 주위의 부추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절제란 진정한 용기의 다른 표현이다.